우리 아이들은 천천히 자랍니다.

저희 공동체는 천천히 자라는 아이를 둔 엄마들이 모여서 만든 돌봄공동체입니다. 아이가 천천히 자란다니 무슨 말인가 싶으시지요? 우리 아이들은 배우는 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딥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학원에 다니기 어려워요. 좀 더 세밀한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적어 엄마들도 외롭게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지요. 사회기관,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된 채 아이를 키우는 모든 일이 온전히 가정 안에서만, 특히 엄마 혼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집안은 불행의 기운에 짓눌렸고, 하루하루 숨 쉬고 살아가는 것마저 버거웠습니다. 이러다 아이와 부모의 관계마저 나빠지는 건 아닐까 너무나 걱정되었고요. 복지관이나 지역 교육 기관들이 하는 단기 프로그램, 센터 치료수업을 다니기 바빴습니다. 집에서는 숙제나 학습으로 엄마와 아이가 승강이를 벌이다 갈등이 깊어지고, 둘 다 자존감이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매일 전전긍긍 살아갔고,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또래와 만날 수 있는 생활공간이 필요했어요. 아이를 이해하는 선생님들이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며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다독여 줄 수 있는 배움터, 혼자가 아닌 같은 속도로 걸어가는 친구들과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놀이터, 그런 공간이 세상에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막연했던 희망이 현실로 나타날 때 지역 사회의 도움으로 공간이 생겼고, 운명처럼 돌봄공동체 지원사업에 참여하며 퍼즐이 맞추어져 갔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생각했던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공동체는 학기 중과 방학에 모여 다양한 체험을 같이하고 우리만의 공간에서 놀고 학습하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일주일에 2~3회 만났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아이들은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정해진 규칙에 조금씩 적응해 갔습니다. 점차 자기 학습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스케줄에 맞추어 생활하는 데 익숙해져 갔습니다.

아이들이 소풍을 가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진 아이들이 딱지치기 놀이를 하고 있는 사진

가장 힘들어했던 건 또래끼리 관계 맺고, 놀고, 학습하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는데, 그것도 차차 나아졌습니다. 다양한 친구들이 모였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생활을 같이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같이 성장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가슴이 절절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엄마, 공동체 매일 가고 싶어요.” “공동체 언제 또 가요?”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분명 효과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며 대치하고 마음 다치는 일은 이제 없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라는 분위를 형성하여 자연스럽게 배우고 자라 가는 것이 정말로 아이들을 위하는 환경이고, 그것이 바로 어른의 몫이었습니다. 막연했던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져 간 거지요. 재능기부 선생님들의 배려로 아이들에게 책 놀이, 미술 영어 수업을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소그룹으로 수업을 나누어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아이들은 느려도 확실하게 변화해 갔습니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꿈과 희망이 자라는 마음 자람 배움터' 현수막을 들고 찍은 사진

돌봄공동체 첫해라 모르는 것투성이였습니다. 참 많이 헤맸고, 실수도 많았지만 공동체가 힘을 합치고 역할을 나누며 일 년을 살아왔습니다. 이만하면 잘해낸 것도 같습니다. 아이들 학습이 어려워지면 엄마들이 봐 줄 수 있는 한계가 금방 닥치지 않을까 고민이 많지만, 올해 한 단계 넘어왔듯, 또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느린 걸음이라도 아이들에게는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기회는 다시 온다고,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친구와 어른들이 있다고 아이들 마음에 굳은 믿음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우리 공동체입니다.

2022년 돌봄공동체성장사례집 – 마을자람배움터